
굳게 닫힌 커튼에 방 안이 아침인지 밤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침대에 널브러져 자고 있던 심원은 몸을 뒤척이다 이내 일어났다. 하품하며 흐트러진 머리를 긁적였다. 커튼을 열자 눈 부신 햇살이 심원을 강타했다.
“윽, 눈부셔....”
심원은 다시 커튼을 치고는 방 밖으로 나왔다. 화장실에서 세수하니 잘생긴 얼굴이 보였다. 심원은 고개를 이리저리 돌려보며 자기만족을 했다. 계단을 내려와 거실로 향하니 3개의 선물 상자와 함께 쪽지 하나가 붙어 있었다.
《생일 축하해! 만나서 축하해 주고 싶은데,
급한 일이라 오늘은 셋 다 들어오기 힘들 거야.
케이크는 냉장고에 넣어놨으니 먹고 싶을 때 먹어;P》
심원은 익숙하게 편지를 떼어내며 냉장고 문을 열었다. 새하얀 생크림 케이크와 그 위에 딸기가 올려져 있었다. 매년 똑같은 패턴, 똑같은 케이크. 이젠 섭섭하지도 않다. 가족 중 가장 시간이 넉넉한 건 자신밖에 없으니 당연하지 않은가.
심원은 무덤덤하게 케이크 한 조각을 잘라 접시 위에 덜었다. 의자에 앉아 익숙하게 핸드폰을 켰다. 핸드폰을 켜자마자 새로운 화가 업로드되었다는 메시지가 떴다.
《광오선마도 000화 가 출간되었습니다.》
심원은 케이크 위에 올려진 딸기를 포크로 집어 먹으며 다음 화를 클릭했다. 오늘은 또 어떤 이야기가 나올까 기대했다. 놀랍게도 이번 화는 누군가의 생일 이야기였다. 그것도 심원이 별로 좋아하지 않는 쓰레기 악역 심청추의 생일이었다. 하필 자신과 같은 날에 생일이라니. 심원은 미간을 찌푸리며 이야기를 읽기 시작했다.
* * * * *
낙빙하는 밖에서 들리는 소란에 눈을 떴다. 아직 해도 뜨지 않은 새벽. 평소라면 가장 먼저 일어나던 낙빙하는 금일만큼은 늦은 편에 속했다. 문을 열고 주변을 살폈다. 사람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며 온갖 음식과 물건을 나르고 있었다.
낙빙하는 가만히 지켜볼 수 없어 달려가 그들을 도와주었다. 일손이 부족한 상황에서 평소 아니꼽던 낙빙하가 나타나니 그들은 옳다구나 하는 마음으로 온갖 잡일을 낙빙하에게 시켰다. 낙빙하는 오늘이 무슨 날인지 물어보고 싶었지만 입을 닫고 하는 일에 집중했다.
사람들이 한두 명씩 사라지더니 이내 일하는 사람은 낙빙하 밖에 남지 않았다. 낙빙하는 사형과 사저들이 급한 일이 있어서 그런 거로 생각하며 일을 이어갔다. 창고를 가득 채운 물건을 정리하는 건 쉽지 않았다. 물건을 정리하던 중 편지 한 통이 떨어졌다. 누구의 것인가 봤더니 심청추에게 온 편지였다.
《심봉주, 그대의 탄생을 축하하네. 직접 찾아가 축하를 해주어야 하나 내가 누구와 달리 매우 바쁜 몸이 아닌가. 대신 귀한 선물들을 함께 동봉하여 보내니 부디......》
오늘은 사존의 생신이셨기에 그토록 사람들이 바쁘게 움직였던 거였다. 낙빙하가 문하생으로 들어온 뒤 처음 맞는 심청추의 생신이다. 제자 되는 자가 스승의 생신날에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건 예를 범하는 일이라 생각한 낙빙하는 급하게 사존에게 드릴 선물을 준비하기 위해 부엌으로 향했다.
이미 날은 어두워졌고, 아무것도 없는 낙빙하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일은 생일상이라도 대접하는 것이다. 이미 충분한 요리를 내갔지만 하나 더 추가한다고 해서 싫어하지는 않을 것이다. 어쩌면 한 번 맛보시고 저를 좋아해 줄지 모른다. 낙빙하는 자신에게 “맛있다.”라는 말을 해줄 심청추를 기대하며 가장 자신 있어 하는 요리를 준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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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입 먹으면 절대 잊을 수 없는 최고의 요리가 만들어졌다. 낙빙하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요리를 들고 사람들이 모여 있는 연회장으로 향했다. 사람들은 이미 한껏 취해있었다. 멀리서 악청원에게 술을 받는 심청추의 모습이 보였다. 심청추에게 가까워질수록 심장은 더욱 거세게 뛰었다.
심청추는 음식을 들고 자신에게 다가오는 낙빙하를 보더니 이내 미간을 찡그리며 혀를 찼다. 낙빙하는 심청추의 앞에 음식을 놓아두고는 공손하게 인사를 건넸다.
“제자가 어리석어 사존께 인사가 늦었습니다.”
심청추는 자신을 향한 시선을 의식하며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괜찮으니 일어나거라. 이리 늦은 것을 보니 바쁜 일이 있었겠지. 네 마음을 알았으니 어서 하던 일이나 마저 하려무나.”
“하혜와 같은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낙빙하는 자신의 선물을 심청추가 받아주었다는데 기뻐하며 다시 창고로 향했다. 축제와도 같은 연회장을 보다가 아무도 없는 창고를 보니 그 삭막함이 배로 전해졌다. 낙빙하는 심청추가 자신의 음식을 마음에 들어 하기를 바라며 남은 정리를 했다. 모든 정리가 끝났을 때는 연회도 끝나 있었다. 사람들이 빠져나가고 어린 제자들이 남아 정리를 하고 있었다. 낙빙하도 그들과 함께 다시 정리했다.
정리하던 낙빙하는 심청추의 식탁 위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음식을 발견했다. 처음 모습 그대로 한 입도 먹지 않은 자신의 음식이었다. 심장이 얼어붙었다.
‘섭섭해하면 안 돼. 내가... 내가 요리를 못해서 사존의 마음에 들지 못한 것뿐이야.’
낙빙하는 자신이 만든 음식을 가지고 쓰레기장으로 향했다. 그 앞에서 한참을 움직이지 못했다. 낙빙하는 결심이라도 한 듯 자신이 만든 음식을 버렸다.
‘더 잘하면 돼.’
그날 이후 낙빙하의 요리 실력은 청정봉 그 누구도 따라올 수 없을 정도로 향상되었다고 한다.
* * * * *
소설을 다 읽은 심원은 케이크를 든 손을 내리고는 다른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아니! 이런 인간쓰레기를 봤나! 낙빙하가 어떻게 만든 음식인데!”
분명 심청추의 생일인데 생일과 관련된 이야기보다 음식을 만드는 과정이 2/3 이상이다. 심지어 너무 맛있어 보여! 먹고 싶어!
“아. 나도 낙빙하가 만든 음식 먹어 보고 싶어.”
심원은 자신의 앞에 있는 케이크를 다시 떠먹으며 낙빙하가 만든 음식이 어떤 멋일지 상상해 보았다.
* * * * *
창 너머로 강렬한 태양이 심청추를 향해 내리쬐었다. 심청추가 눈을 찌푸리며 눈을 뜨려는 순간 방해되는 햇빛이 사라졌다. 심청추는 편해진 눈가에 다시 잠을 청하려 했다. 그러다 갑자기 싸늘한 기분이 들며 눈이 떠졌다. 고개를 돌리니 백련꽃 같은 화사한 미소의 낙빙하가 햇빛을 등진 채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빛이 마치 “나 주인공이요.” 하는 것처럼 뿜어나왔다.
심청추는 당황하지 않은 척 진지하게 낙빙하에게 말했다.
“빙하야. 지금 무얼 하는 게냐.”
“사존에게 불편함이 없도록 제자가 햇살을 가리고 있겠습니다.”
‘아니야! 그러지 마!’
“괜찮으니 그만 가도 좋다.”
“그...”
낙빙하는 뜸을 들이며 뭔가 말하고 싶어 했다. 무슨 일이냐고 묻기 직전 탁자 위에 놓인 음식이 보였다. 저 모양, 저 냄새, 저 빛깔은!! 당시 정말 먹어보고 싶었던 낙빙하의 요리 중 하나였다.
제가 알기로 저 요리는 심청추의 생일날 잔혹하게 퇴짜맞은 이후 한 번도 만들지 않았던 요리다. 그래서 빙의 이후로 절대 맛볼 수 없는 요리라 생각했는데! 그 요리가 지금 제 눈앞에 있다.
심청추는 떨리는 마음을 가다듬으며 헛기침을 했다.
“빙하야. 이게 무엇이냐.”
“그게..... 솜씨가 부족하나 제자가 사존을 위해 만들어보았습니다.”
낙빙하는 과거처럼 퇴짜를 맞을 수 있다는 두려움에 손을 꼼지락거렸다.
‘백련빙 최고! 맛없어도 맛있게 먹을 수 있어.’
낙빙하가 만든 음식이 맛이 없을 수 없지만 설사 독이라도 먹어줄 수 있다.
그런 심청추의 마음도 모른 체 낙빙하는 조심스럽게 음식을 심청추의 앞에 놓았다.
“그럼 제자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낙빙하가 빠르게 나가려는 순간 뒤에서 수저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낙빙하는 숟가락이 칼이 들려있는 것처럼 심장이 거세게 뛰었다. 달그락, 한 입 먹었다. 낙빙하는 침을 삼키며 혹시 자신에게 뭐라 말해주지 않을까 기대했다. 하지만 낙빙하가 문을 닫고 나가는 순간까지도 어떤 답도 들을 수 없었다. 낙빙하는 그래도 사존이 자신의 음식을 먹어 주었다는데 만족하며 서둘러 자리를 옮겼다.
혼자 남은 심청추는 입을 막고 감동했다.
“빙형 최고. 존맛탱!”
비록 앞으로의 생이 두렵지만 이렇게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다니. 이게 빙의의 최고의 장점이라고 되새겼다.
그릇까지 핥아먹을 기세로 다 먹은 심청추는 문득 왜 이걸 만들었는지 의문이 들었지만 의문은 빠르게 풀렸다. 식사가 끝나는 것과 동시에 영녕녕이 튀어나와 생신을 축하드린다며 꽃 관을 심청추에게 씌어주었다.
‘이런 건 낙빙하한테 주라고! 내가 쓰는 건 OOC야!’
그런 심청추의 마음도 모른 채 영녕녕은 행복해하며 자리를 떠났다. 심청추는 한숨을 내쉬며 꽃 관을 벗었다. 그 뒤 악청원과 류청가도 도착했다.
‘아니, 다들 나중에 만나면 되지 꼭 이른 아침부터 찾아와야겠어?’
심청추는 그렇게 투정 부리면서도 내심 기분이 좋았다. 모두의 축복을 받으며 맞는 생일은 오랜만이라 마음이 포근해지는 것 같았다. 심청추는 새어 나오는 웃음을 부채로 가렸다. 즐거운 생일이 될 것 같다.
* * * * *
어두운 방 안,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지만, 심구는 눈이 저절로 떠졌다. 이곳에 온 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 처음 보는 세상, 풍경, 물건. 모든 것이 새로웠다. 놀랍게도 이곳 사람들은 수련을 몰랐다. 모두 하찮고 힘없는 사람들. 오직 지식과 실력만으로 살아가는 이들이었다.
적응하는 데 시간은 걸렸지만 그리 어렵지는 않았다. 특히 이 심원이란 사람의 가족들은 심구가 기억을 잃었다고 하니 걱정하며 적극적으로 도와줬다. 가족애라는 게 이런 것일까. 그들은 심구가 일상에 적응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했다.
“난 너희가 아는 심원이 아니야.”
그 말이 턱 밑까지 차올랐지만, 그 달콤함에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심구는 평소처럼 계단을 내려와 거실로 향했다.
펑, 펑!
갑자기 터지는 소리에 심구는 영력을 사용하려 했지만,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았다. 죽는다고 생각한 순간 앞에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하하하! 폭죽에 그렇게 놀라면 어떡해!”
심구는 당황하며 주변을 살펴보니 작은 종이 가루가 여기저기 흩날렸다. 심원의 어머니는 심구를 잡고 자리에 앉혔다. 다른 이들도 자리에 앉더니 새하얀 음식을 식탁 위에 올렸다.
“가족이 다 함께 맞은 생일은 오랜만이지? 그동안 함께하지 못해 미안해.”
“그래도 언제나 사랑하고 있으니까. 생일 축하해.”
“생일 축하..... 어? 울어? 왜 그래?”
가족들은 갑자기 눈물을 흘리는 심구를 보며 당황했다. 심구는 고개를 저으며 괜찮다고, 아무것도 아니라며 웃었다. 처음 느껴보는 따뜻함에 이게 사랑인가 싶었다. 행복한 생일이 될 것 같다.




